기록되지 않은 삶을 역사로,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의 ‘매우 쉬운’ 기록 접근법
목차
-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그들이 주목하는 ‘투명인간’의 삶
- ‘서로 돌봄과 치유의 과정’으로서의 구술생애사 작업
- 매우 쉬운 구술생애사 접근: ‘기술’보다 ‘태도’
- 구체적이고 자세한 기록의 과정: 듣기, 존중하기, 역사로 세우기
- 구술생애사의 의미와 확장: 평범한 삶이 만드는 ‘우리들의 드라마’
1.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 그들이 주목하는 ‘투명인간’의 삶
노회찬재단의 ‘구술생애사팀’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목소리가 닿지 않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로 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3년 봄, ‘실천하는 인문예술교실’의 구술생애사 강좌로 첫걸음을 뗀 이 팀은,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주목했던 노동자, 자영업자, 농민, 여성, 장애인 등 이른바 ‘6411 투명인간'(새벽 첫차를 타고 일터로 나서는 이들을 상징)의 삶에 온기 있는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팀의 활동은 역사적 기록이 권력자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 그 자체임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봉제노동자, 해고노동자, 요양보호사, 그리고 난치병 아내를 간병하는 전직 교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지만 그들의 깊은 사연을 알기 어려웠던 ‘이름 없는 삶’들을 주인공으로 발굴합니다.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은 이들의 구체적인 생애를 면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실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2. ‘서로 돌봄과 치유의 과정’으로서의 구술생애사 작업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 작업의 핵심 모토는 “서로 돌봄과 치유의 과정”입니다. 구술생애사(Oral History) 작업은 구술자(화자)와 구술채록자(청자/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 구술자는 자신의 아픔과 한계를 정리하고 자신과 화해하며, 나아가 타인과도 다른 시선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개인을 둘러싼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깊은 치유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기록자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글쓰기 기술’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진정성 있는 태도로 변화합니다. 구술생애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말해지지 않거나 묵살되어 온 삶을 귀 기울여 들으며, 기록자와 구술자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연대의 장이 됩니다.
3. 매우 쉬운 구술생애사 접근: ‘기술’보다 ‘태도’
구술생애사 기록에 있어 ‘매우 쉬운 방법’이란, 복잡한 글쓰기 기교나 학문적 지식 이전에 갖춰야 할 ‘태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 강좌의 참여자들이 얻은 가장 큰 성과 역시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고 언급될 정도로, 진정성 있는 태도는 구술생애사 작업의 시작점이자 핵심 동력입니다.
가장 쉬운 접근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듣는 태도입니다. 구술자의 말의 속도를 존중하고, 화자가 자신의 삶의 결을 편안하게 풀어낼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화자의 언어와 삶의 결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구술자의 삶을 판단하거나 재단하려 들지 않고, 그들의 표현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는 기록자가 우위에 서지 않고, 구술자를 삶의 주체적인 역사가로 인정하는 민주적인 기록 방식입니다.
4. 구체적이고 자세한 기록의 과정: 듣기, 존중하기, 역사로 세우기
구술생애사 기록은 단순히 인터뷰를 녹음하고 글로 옮기는 과정을 넘어섭니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① 관계 형성 및 준비: 구술자와의 깊은 신뢰 관계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노회찬재단팀의 경우,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의 관계를 맺고 구술 작업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질문지를 생애사 연대기, 주요 삶의 무대, 혹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미리 준비하지만, 면담 중에는 구술자의 이야기에 따라 유연하게 질문을 던져 충실한 구술을 이끌어냅니다.
② 면담 및 채록: 면담 시에는 녹음 또는 녹화와 함께 구술자와 채록자의 대화 전체를 텍스트화하는 ‘녹취문 작성’이 이루어집니다. 면담자는 구술의 일시, 장소, 주제를 명확히 녹음하고, 구술자의 감정과 맥락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구술자의 구어체를 최대한 살려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는 구술의 생동감과 진정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합니다.
③ 초고 작성 및 검토: 녹취문을 바탕으로 구술자의 생애사를 논리적으로 구조화하여 초고를 작성합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는 구술자와의 공유 및 검토입니다. 초고를 구술자에게 보여주고, 혹시라도 수정이나 비공개를 원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글을 읽기 어려운 구술자에게는 초고를 녹음하여 들려주는 방식으로 검토를 진행하는 등 구술자를 배려하는 섬세한 과정이 동반됩니다.
④ 자료 수집 및 정리: 구술자의 삶과 관련된 사진, 일기장, 문서 등 ‘생애사 자료’를 구술자의 동의하에 수집하고 정리합니다. 이는 구술 내용을 보강하고 역사적 증거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며, 구술생애사에 입체감을 더합니다.
5. 구술생애사의 의미와 확장: 평범한 삶이 만드는 ‘우리들의 드라마’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의 노력은 단순한 ‘자료’를 넘어 ‘역사’로 확장됩니다. 이들의 첫 결실인 헌정 도서 『우리들의 드라마』처럼, 이 작업은 평범한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드라마틱하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노회찬재단은 이 작업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으며, 그 모든 생애는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선언을 합니다.
구술생애사는 우리 사회의 ‘역사’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특정한 영웅이나 사건 중심의 역사가 아닌, 일상 속에서 땀 흘리고 투쟁하며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모여 더 크고 진실한 역사가 만들어짐을 보여줍니다.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의 접근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타인의 삶에 귀 기울여 연대할 수 있는 ‘매우 쉽고’ 강력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